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베르토 아스카리 (문단 편집) == 생애 == 그의 아버지는 안토니오 아스카리로 역시 뛰어난 레이서였지만, 몽틀레리 서킷에서 알베르토가 단 7살일 적 사고로 사망한다. 아이러니하게도 본인도 사고로 사망한 게 특이한 점. 초반에 모터사이클 레이싱을 하다가, 1940년 밀레 밀리아[* 이탈리아에서 열렸던 클래식 오픈로드 레이스.]에 참여하면서 레이싱 씬에 등장한다. 2차대전 후 [[마세라티]], [[알파 로메오]] 등의 팀에서 레이싱을 하다가 1949년 [[페라리]]로 이적해 프랜차이즈 선수가 된다. 1950년에는 알파 로메오의 파리나, 1951년에는 [[후안 마누엘 판지오]]에 막혀 우승하지 못했지만, 1952년에 '''출전한 6전 전승, 전경기 패스티스트 랩, 5경기 폴 포지션'''을 기록하며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한다. 1953년에도 마찬가지였지만, 시즌 후반기부터 아스카리는 상당한 저항에 봉착하기 시작했다. 시즌 시작부터 3연속 우승(인디 500을 빼면)을 차지했지만 4전 프랑스 GP에서 호손에게 우승을 내준다. 이 경기는 사상 최고의 명경기로 추앙받는 경기로 호손, 판지오, 곤잘레스와 아스카리가 경기 내내 치열한 경쟁을 벌이다 마지막 랩에서야 우승이 결정된 경기.--[[막스 베르스타펜|어?]]-- 뭐 여하튼 아스카리는 그 뒤로도 2경기를 우승하며 비교적 편하게 챔피언 2연패에 성공한다. 1954년에는 더 좋은 연봉을 제시한 [[란치아]]로 이적했는데 란치아의 차가 시즌 마지막 경기에까지 준비되지 않아 아스카리는 [[마세라티]]와 [[페라리]]에서 한 두 번씩 경기를 뛰나 별다른 임팩트를 남기지는 못했다. 비토리오 야노가 디자인한 란치아 D50[* F1 역사에 남을 전설적인 차 중 하나로, 여러 가지 기술적 발전을 이루어냈고 이후 페라리로 넘어가 1956년에 챔피언십을 따낸다.]은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야 준비되었는데 아스카리는 그 차를 이끌고 폴을 기록하나 본선에서는 클러치 문제로 리타이어. 1955년 아스카리는 첫 경기인 아르헨티나에서 리타이어하지만 논챔피언십 두 경기에서 우승하며 기세를 높이고 있었다. 하지만 이후 진행된 두번째 경기인 모나코 GP에서도 아스카리는 리타이어하는데, 시케인을 지나려다 실수로 벽을 들이받고 차를 모나코 앞 바다에 쳐박고도 코뼈만 부러진 채 기적적으로 살아나온다. '''그리고, 이 경기는 아스카리의 마지막 경기가 되고 만다.''' 하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난지 4일 후 그는 페라리의 신차 테스팅을 구경하러 몬차에 나타났다가 몇 랩 운전하기 위해 '''행운의 푸른 헬멧이 아닌 다른 헬멧을 쓰고''' 차에 오르지만 3랩만에 사고가 났고 아스카리는 즉사한다. 이후 란치아는 F1 출전을 중지하고, 그를 마지막으로 [[이탈리아인]] 챔피언은 나오지 않고 있다. 이후 페라리는 이탈리아의 챔피언 드라이버를 찾으려 애타게 노력했지만 그렇게 발굴한 무소, 반디니, 스카피오티, 알보레토 등은 모두 레이싱 중 사망하는 최후를 맞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